1. 한 마음과 한 뜻을 향한 권면의 시작
바울은 편지의 문안 인사와 감사를 마친 후 곧바로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용건을 꺼내 듭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비난을 쏟아내기보다는, 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권면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공동체 안에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이러한 강력한 권면 역설적으로 현재 고린도 교회가 같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 마음과 한 뜻에서 멀어져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였는데, 이러한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2. '근로에의 집' 편으로 들려온 분쟁의 실상
바울이 고린도 교회 내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구체적인 경로가 밝혀집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처럼 하나의 커다란 성전 건물을 공유하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라는 대도시 안에 성도 몇몇이 모이는 가정 교회들이 여러 개 존재했고, 이 가정 교회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곧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이때 에베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에게 고린도의 여러 가정 교회 중 하나인 '근로에의 집' 성도들이 찾아와 교회 안에 큰 분쟁이 일어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제보합니다.
3. 네 개의 파당으로 쪼개진 공동체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추종하는 인간 지도자를 기준으로 삼아 무려 네 개의 학파나 정치 집단처럼 갈라져 있었습니다.
- 바울파: 고린도에 처음 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한 바울을 영적 아버조로 삼고 따르는 무리입니다.
- 아볼로파: 바울 이후에 찾아와 지적이고 웅변적인 설교로 큰 감명을 주었던 아볼로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무리입니다.
- 개바(베드로)파: 예수님의 수제자이자 정통 유대주의적 권위를 가진 베드로를 우위에 두는 무리입니다.
- 그리스도파: 인간 지도자들의 분파 싸움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들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자신들만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또 하나의 당파에 불과했습니다.
4. 세례의 의미 오해와 복음의 본질
바울은 이 기막힌 현실을 두고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라며 탄식 섞인 질문을 던집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아니며, 성도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세례를 받는 과정을 헬라 사회의 철학 학파에서 스승과 제자가 맺는 관계, 혹은 정치적인 후견인(스폰서)과 피후원자의 관계처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즉,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를 일종의 영적 계급이나 훈장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소수의 사람(크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 집 사람) 외에는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자랑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지 못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본질적인 목적은 눈에 보이는 의식인 세례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임을 강력히 선언합니다.
5. 메시지 및 기도
교회로 부름을 받은 모든 성도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운 지도자나 목회자의 매력, 인간적인 지혜를 과도하게 추종하다 보면 공동체는 반드시 분열과 파당의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세례는 특정 지도자의 제자가 되는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오직 주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인간의 말과 지혜를 자랑하느라 십자가의 능력을 헛되게 만들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분 안에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고 온전히 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람 지도자를 과도하게 추종하다가 분열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도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 질문
-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보다 특정 사역자나 사람 지도자의 역량을 더 의지하고 추종하며 은연중에 편을 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가 받은 세례의 참된 의미를 기억하며 사람의 기준이나 세상의 정치적 원리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와 주권 아래에 순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 우리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다양성을 갈등과 분쟁의 도구로 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묶어내기 위해 내가 먼저 언행을 바꾸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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