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소망이 있는 삶/매일성경 큐티

매일성경: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야곱의축복 2026. 3. 7. 09:38

2026년 3월 7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매일성경」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 요한복음 11장:17~27)

 

1. 절망의 시간과 예수님의 도착

  •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죽은 지 나흘은 영혼이 시신을 완전히 떠나고 부패가 시작되는 때로, 인간적인 모든 희망이 완전히 차단된 '절망의 마침표'가 찍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많은 유대인이 슬픔에 빠진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2. 마르다의 신앙과 예수님의 가르침

  •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다는 예수님께 달려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늦게 오신 예수님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섞인 표현인 동시에, 예수님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이를 마지막 날 종말론적인 부활의 때에 일어날 일로 이해하며 지식적인 동의를 표합니다.

3. 부활과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

  • 예수님은 마르다의 미래적인 부활 신앙을 현재로 끌어오시며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단순히 부활을 일으키시는 분을 넘어, 부활 그 자체이자 생명 그 자체이심을 강조하십니다.
  • 주님과 연합한 자에게 죽음은 종착역이 아닌 통과역에 불과하며, 부활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르치십니다.

4. 마르다의 위대한 신앙 고백

  •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마르다는 비록 오라버니가 지금 당장 살아날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으나, 주님의 존재 자체를 신뢰하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 이 고백은 요한복음의 신앙 고백 중 절정에 해당하며, 상황에 대한 확신을 넘어 대상(예수님)에 대한 전인격적인 신뢰로 도약한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5. 메시지 및 기도문

  • 우리 인생에는 예고 없이 찾아와 모든 문장을 끝내버리는 '마침표'와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그 마침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로운 시작인 '쉼표'로 변화됩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막연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모든 무력함과 영적 죽음의 상태를 뚫고 들어오는 주님의 임재입니다. 상황이 최악일지라도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당당하게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주님과 함께라면 결코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기도: 주님 나사로의 무덤 곁에 울고 있던 마르다의 모습이 바로 저희의 모습입니다 저희는 주님께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그랬습니까라는 원망 섞인 눈물로 우리의 시간들을 한탄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 주옵소서 죽음이 마침표가 아니라 주님의 손길이 닿으면 찬란한 시작이 됨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던 그 음성이 오늘 병든 우리의 육체 위에 무너진 우리 가정 위에 소망을 잃은 성도들 위에 천둥 소리처럼 울려 퍼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우리에게 이제 끝났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내일의 염려와 죽음의 공포에 매여 오늘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답게 당당하게 오늘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 질문

 

  •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인간적인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내 삶의 마침표를 새로운 시작의 쉼표로 바꾸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부활을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으로만 여기지 않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포하신 예수님 그 자체가 지금 내 안에 거하시는 현재의 능력임을 믿고 사는지 묵상해봅시다.
  • 내 기도 제목이 내가 원하는 방식과 때에 이루어지지 않아 원망이 생길 때에도, 마르다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나이다"라는 전인격적인 고백을 드릴 수 있는지 생각해봅시다.